다리를 잃은 로봇
다리를 잃은 로봇은 걷는 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지 않는다. 원래 알던 걸음을 남은 다리에 다시 나눠 쓴다. 삶이 달라졌을 때도 마찬가지 아닐까.
석사 때 내가 붙잡고 있던 문제는 좀 잔인하게 들린다. 멀쩡히 걷던 로봇의 다리를 갑자기 떼어내면, 그 로봇은 다시 걸을 수 있을까.
농담 같지만 진지한 질문이었다. 로봇이 실험실 밖으로 나가면 언젠가는 부서진다. 모터가 타버리고, 관절이 꺾이고, 다리 하나가 통째로 못 쓰게 된다. 그때마다 사람이 달려가 고쳐줄 수는 없다. 결국 로봇이 스스로 "아, 나 지금 다리가 없구나" 하고 다른 방식으로 걷는 법을 찾아야 한다.
힌트는 장님거미한테서 얻었다. 다리가 가늘고 긴 그 거미 말이다. 장님거미는 다리를 잃어도 하루 안에 다시 꽤 잘 걷는다고 한다. 걷는 법을 처음부터 새로 배우는 게 아니다. 원래 알던 걸음을 남은 다리에 맞게 다시 나눠 쓰는 거다.
그래서 우리가 만든 방법도 그런 식이었다. 먼저 로봇이 멀쩡할 때의 걸음걸이들을 잔뜩 모아 작게 압축해둔다. 그러다 다리가 사라지면, 그 압축된 걸음들 중 몇 개를 꺼내 남은 다리에 다시 배정해본다. 다리 여섯 개짜리 로봇에서 두 개를 떼어냈을 때, 시뮬레이션 없이 실제 바닥 위에서 10분도 안 돼 다시 앞으로 걸어 나갔다.
그 장면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묘했다. 다리 네 개로 비틀비틀 걷는 로봇이 멋있었다기보다는 좀 짠했다. 자기가 원래 걷던 모양을 어떻게든 찾아가려는 것처럼 보여서.
대부분의 사람도 다리를 잃는다. 물론 진짜 다리 말고.

다니던 회사가 없어지기도 하고, 몇 년 붙잡던 일이 끝나기도 하고, 믿던 관계가 사라지기도 하고,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지기도 한다. 그럴 때 우리는 쉽게 "이제 완전히 새로 시작해야 해"라고 말한다. 마치 그동안 쌓아온 게 잃어버린 다리랑 같이 다 떨어져 나간 것처럼.
근데 그렇지 않은 것 같다. 나도 기계공학을 하다가 AI로 넘어왔고, 컴패니언 앱을 만들다가 로봇을 만들었고, 지금은 또 다른 걸 만들고 있다.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이었는데, 돌아보면 한 번도 진짜 처음부터 시작한 적은 없었다. 이전에 걷던 방식이 늘 어딘가에 압축돼 남아 있었고, 새 몸에 맞게 다시 나눠 썼을 뿐이다.
물론 똑같이 걸을 순 없다. 다리 네 개짜리 로봇은 여섯 개였을 때처럼 걷지 못한다. 좀 더 어색하고, 좀 더 느리고, 가끔은 옆으로 샌다. 그래도 앞으로는 간다. 그거면 된 거 아닐까.
삶이 달라졌을 때 필요한 건 완벽한 새 출발이 아니라, 그동안 걸어온 걸음을 남은 다리에 어떻게 다시 나눠줄지 고민하는 일인 것 같다. 버리지 말고, 다시 배정하기.
오늘도 어딘가에서 다리 하나쯤 잃은 채로 걷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. 조금 비틀거려도 괜찮다. 원래 걷던 걸 기억하고 있으면, 생각보다 금방 다시 걷게 된다.